서울과 가까운 양평, 공기 맑고 병원 가기도 쉬워
동문회 등 커뮤니티 형성, 노년의 외로움 달래
아파트 1채ㆍ건강보험, 마지막 노후자금으로 활용
입력: 2011-01-10 17:54 / 수정: 2011-01-10 18:00
"외롭지 않느냐고요? 서울에서 은퇴자들이 밀려들다 보니 이곳에 동문회까지 생겼는 걸요. "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는 박종화씨(63).기자를 만나자 대뜸 "집 마당 텃밭에서 상추나 고추를 길러 봤어요? 얼마나 신기한지…"라고 말했다.
LG화학에서 일하며 평생 콘크리트만 밟던 그가 양평에 내려온 것은 2005년.직장생활을 그만두면서부터다. 양평은 이제 박씨에게 행복과 건강을 보장하는 제2의 고향이 됐다. 두 달에 한 번 양평 시내와 동문들 집에서 번갈아 열리는 덕수상고 동문회 모임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양평에 거주하며 동문회에 나오는 선 · 후배들의 연령도 50대에서 80대로 다양하다. 입소문을 타고 박씨 같은 은퇴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50세대의 은퇴자마을도 만들어졌다. 그런 마을이 주위에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대지 412㎡(125평),건축연면적 100㎡(30평) 규모로 작은 텃밭이 갖춰진 아담한 농가주택.서울 길동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줄여 1억2000만원에 구입했다. 박씨는 "공기와 물이 좋다 보니 아팠던 몸도 금세 좋아졌다"며 "식자재를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인근에서 구입해 먹다 보니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다"고 자랑했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박씨가 생활비를 포함해 매달 쓰는 돈은 200만~300만원 정도다. 여행이 좋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다 보니 자동차 유류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기요금이나 난방비 보험료 등 각종 공과금은 다 합쳐야 100만원이 채 안 된다.
박씨에겐 연금과 같은 안정적인 소득원이 없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연금이 아닌 퇴직금만 받았다. 국민연금은 일시금으로 모두 인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음식점 사업을 한답시고 거의 다 날렸다고 한다. 다행히 예전부터 갖고 있던 서울 길동 아파트 1채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양평집을 사느라 규모를 줄인 길동 아파트는 아직 갖고 있다. 마지막 노후 자금용으로 쓸 생각이다. 시세는 3억7000만~3억8000만원 정도다. 지금 살고 있는 양평 집도 5년 전에 비해 많이 올라 2억8000만원을 호가한다.
박씨의 원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어렸을 때 자란 고향보다 이젠 이곳이 더 정겹다. 특히 서울과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박씨는 "길동 아파트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차로 1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경희동서신의학병원 같은 강남지역 대형 병원을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고 했다. "양평이 서울과 가까워 은퇴자들이 몰려들다 보니 집값과 땅값도 계속 오르는 추세"라며 "고향보다 양평을 택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냥 편안하게 은퇴 이후의 삶을 사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현지 부동산 중개회사에서 일한다. 돈 때문이 아니다. 자아실현도 하고 비슷한 처지의 은퇴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벌이도 괜찮다. 1년에 많게는 2000만원까지 벌 때도 있다. 동네 읍사무소에서도 일거리를 준다.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면 월 20만원가량을 벌 수 있다. 병원비는 의료 보장보험을 들어놔서 안심이다. 얼마 전에도 사고로 다쳤는데 전액 보험 처리했다.
전원에서 노후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박씨는 동문회와 성당에서 교류하며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맛본다고 했다. 성당엔 등록한 신자들만 3000명에 달해 새로운 이웃을 많이 사귀었다.
박씨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큰 아들은 연극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방송 출연을 마다하고 연극에 몰두할 만큼 열정도 있다. 최근엔 결혼해 독립했다. 길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작은 아들도 탄탄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대한민국 부모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자녀 교육에서 해방된 셈이다.
박씨는 이곳에서 노후 생활을 마치겠다는 각오다. 그는 "앞으로 몇 살까지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큰 욕심이 없다"며 "이곳에서 아내,지인들과 함께 편안한 여생을 보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노후자금,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거리,건강을 유지하기 좋은 데다 병원이 가까운 주거환경,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박씨는 갈수록 수명이 길어지는 고령화시대에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자식뒷바라지하느라 은퇴 후 가진 돈이 거의 없는 사람들,하릴없이 그저 노인정이나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몸이 아파도 이 악물고 참기만 해야 하는 사람들,친구도 없이 쓸쓸히 황혼을 맞는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이제는 은퇴준비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며 "단순히 돈만 아니라 건강을 지키고 자아도 실현할 수 있는 은퇴생활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준비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 은퇴 후 생활도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행복하고(happy),건강한(healthy) 노후생활은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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